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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우리땅 "해양경찰청"의 독도바다지킴이 <독도역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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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01 17:55

독도는우리땅

독도는 우리땅 입니다!

 
독도 는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나라의 영토이며, 독도에 대한 우리 나라의 영유권은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상 영토주권확립의 핵심요건인 "실효적 지배"에 의하여 확고부동합니다.

독도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우리의 영토로 외교적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입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공고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도에 대한 평온하고 실효적인 지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며, 이러한 실효적지배가 장기간 계속될 경우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이의제기는 사라질 것입니다.
독도는 우리땅 입니다!
국제법상 전쟁 등의 방법을 통한 현상변경이 없는 한 "실효적 지배"여부가 영토주권의 핵심요건입니다.실효적 지배는 "국가권력의 계속적이며 평화적인 행사(continuous and peaceful display of sovereignty)"가 주요관건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정부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가 대외적으로 분쟁지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명백히 우리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과 공공연한 마찰을 야기하는 것은 국제사회 에서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공고화하는 데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일본정부가 독도의 영유권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우리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일본측에 전달하고 있 습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종래 정부는 독도문제에 관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현재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일본 측의「시비」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우리측 입장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지정학적 근거

우리 영토인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48해리인데, 일본 은기도에서는 이 거리의 약 2배인 82해리이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에 포함되어야 한다.

역사적 근거

1. 독도는 신라시대에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을 형성하였으며,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 (512년) 신라에귀속하여 왔다. 그 이후 계속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관리 하에 있다.
2. 일본이 1905년 시마네현 40호 행정조치를 취한 것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님을 실증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근거

1. 그 지역이 주인이 없어야 한다.
2. 영역취득의 국가의사가 있고, 그 의사를 대외적으로 공표 하여야 한다.
3. 그 지역의 실효적인 점유가 있어야 한다.

카이로 선언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폭력과 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구절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겼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예가 '고종강제퇴위'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 그들의 강요로 체결된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이에 대항하여 고종황제가 국가의 자주권회복을 위해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한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궁궐밖에 대포를 배치한 채 고종황제를 위협하여 강제 퇴위시켰다.

국제사회 상황과 우리의 입장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 하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우리도 같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맞대응 하면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 수역이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는 일본 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따라서 소리 나지 않게 독도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강화함으로써 일본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문제제기는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기록용」인 셈이다. 「무대응」 전략에도 한계는 있다. 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전세계가 바다의 경계선을 긋기 위한 작업(EEZ)에 들어갔고 한, 일양국도 그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 Exclusive Economic Zone)은 그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그 수역 안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모든 경제적인 활동을 배타적(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수역을 가리킨다. 이 수역은 영해와 공해의 중간에 자리 잡는 '제3의 수역' 이다. 이 수역의 성격은 경제 활동 면에서는 영해와 같고, 선박이나 비행기의 통과와 국제 통신 등에 있어서는 공해와 같다. 이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다음과 같다.
  • 생물, 비생물 자원의 탐사와 개발 및 보존과 관리
  • 수력, 조력, 풍력 발전을 비롯한 경제적 탐사와 개발
  •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을 설치 운영 하는 권리
  • 해양 환경의 보호 보존에 대한 관할권
  • 해양에 대한 과학적 조사권
이상과 같은 특성 때문에 이 수역을 '자원 영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수역에서 다른 나라들의 모든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수역에서 선박 항해 및 비행기상공 비행의 자유와 해저 전선 파이프라인 부설 등의 자유를 지닌다. 앞으로의 협상추이에 따라서는 독도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등의 심판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정부가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일본과의 영유권 다툼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일본 측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각종 역사적 자료와 지도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독도의역사
 

주요사료

주요사료
사료 내용
삼국사기 (1145년) 원문 “지증왕 13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의의 신라의 512년 우산국 복속을 기록함.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 원문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의의 우산도(독도)와 무릉도(울릉도)가 별개의 섬이고,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에만 보이는 유일한 섬은 독도임을 감안할 때, 우산도가 곧 독도이고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함.
신증동국여지승람 (1531년) 원문 “우산도(독도), 울릉도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의의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을 계승하여 우산, 울릉의 위치를 밝힘.
동국문헌비고 (1770년) 원문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인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다’라고 하였다.”
의의 우산국에 울릉도와 우산도가 모두 포함됨을 밝히고, 우산도가 일본의 송도, 즉 독도임을 증명함.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1900년)
원문 “[울도군의]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할 것···”
 
의의 울도군(울릉군)의 관할 구역으로 독도의 당시 지명인 석도를 포함함.
울도군수 심흥택 보고서 (1906년) 원문 “본군(本郡) 소속 독도가···”
의의 독도가 울도군(울릉군)의 관할구역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줌.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 지령 제3호 (1906년) 원문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설은 전혀 근거가 없음”
의의 당시 정부 최고 기관인 의정부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됨을 부정하여 독도에 대한 영유권 인식을 보여줌.
증보문헌비고 (1908년) 원문 “우산도·울릉도··· 두 섬으로 하나가 우산(芋山)이다. 속(續) 지금은 울도군이 되었다.”
※ 속(續)은 고종시대에 첨부한 내용임.
의의 우산도(독도)와 울릉도 두 섬이 모두 울도군의 관할임을 증명함.
은주시청합기 (1667년) 원문 “인슈(隱州)는 북해 가운데 있다. 옛날에는 오키섬(隱岐島)라고 했다. 북서쪽으로 1박 2일을 가면 송도(독도)가 있다. 또 이곳에서 다시 1일 낮을 가면 죽도(울릉도)가 있다.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이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운슈(雲州)에서 오키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런 즉 일본의 북쪽경계는 이 주(오키섬)를 한계로 한다.”
의의 독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일본 초기 기록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독도가 그들의 영토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명
에도 막부의 질문에 대한
돗토리번 답변서 (1695)
원문 “죽도(竹島: 울릉도)는 이나바(因幡)·호키(伯耆) 부속이 아닙니다. 호키국(伯耆國) 요나고(米子)의 상인 오야 규에몬(大屋九右衛門)과 무라카와 이치베(村川市兵衛)라는 자가 도해하여 어업하는 것을 마쓰다이라 신타로(松平新太郞)가 다스리고 있을 때 봉서(奉書)를 통해 허가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도해한적이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그 일은 잘 모릅니다. (중략) 죽도(竹島)·송도(松島) 그 외 양국(兩國: 因幡國, 伯耆國)에 부속된 섬은 없습니다.” 이상.
의의 울릉도와 독도가 돗토리번 소속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힘.
죽도(울릉도) 도해금지령 (1696년) 원문 (전략) “이전에 마쓰다이라 신타로(松平新太郞)가 인슈(因州: 因幡)와 하쿠슈(伯州: 伯耆)를 다스리던 때 하쿠슈 요나고(米子)의 상인 무라카와 이치베(村川市兵衛)·오야 진키치(大屋甚吉)가 죽도(울릉도)에 도해하여 현재까지 어업을 해왔지만 향후에는 죽도 도해 금지를 명하니 이를 명심하라.
의의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판단 정월 28일”
『원록구병자년 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 안용복 관련 조사 보고서 (1696년) 의의 안용복의 2차 도일 시 활동 상황을 기록한 문서로 ‘죽도’(울릉도), ‘송도’(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조선의 영토임을 명기하고 있음. 정월 28일”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0년)
원문 “죽도(竹島: 울릉도)·송도(松島: 독도)가 조선부속이 된 사정 송도(독도)는 죽도(울릉도) 옆에 있는 섬이다. 송도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기재된 기록도 없고 죽도에 관해서는 원록연간(元祿年間)에 주고 받은 왕복서한에 있다. 원록연간 이후 한동안 조선이 거류하는 사람을 파견하였으나 이제는 이전처럼 무인도가 되어 있다. 대나무나 대나무보다 두꺼운 갈대가 자라고 인삼도 저절로 나며 그 외 어획도 어느 정도 된다고 들었다. 이상은 조선의 사정을 현지 정찰한 바, 그 대략적인 내용은 서면에 있는 그대로이므로 우선 돌아가 사안별로 조사한 서류, 그림 도면 등을 첨부하여 말씀드립니다. 이상. “
의의 일본 외무성 문서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밝히고 있음.
조선동해안도 (1876년) 의의 일본 해군성이 발행한 관찬(官撰)지도로 독도를 한국의 소속으로 표시하고 있음.“
일본 태정관 지령 (1877년) 원문 “품의한 취지의 죽도(울릉도) 외 일도(一島: 독도)의 건에 대해 본방(本邦,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메이지 10년 3월 29일”
의의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은 17세기말 도쿠가와 막부가 내린 울릉도 도해금지조치 등을 근거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내무성에 지시하였음.
 
 
 

주요연표

주요연표
년도 내용
512년 신라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 우산국을 정벌
1145년
『삼국사기』편찬. 512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었음을 서
1417년 울릉도 주민 쇄환(刷還)
1432년 「신찬팔도지리지」편찬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1625년 일본 도쿠가와(德川)막부, 호키국(伯耆國: 돗토리번(鳥取藩)의 일부) 태수(太守)에게 요나고(米子)의 오야(大谷)·무라카와(村川) 양가(兩家)에 대해 울릉도 도해(渡海)를 면허
1693년 안용복(安龍福), 박어둔(朴於屯), 일본 오야(大谷) 선원들에 의해 일본으로 납치
1694년 장한상(張漢相), 울릉도를 조사하고 삼척으로 귀환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수토(搜討)하기로 결정
※ 울릉도 수토제도(1697~1894) : 안용복 사건 이후 3년에 한 차례씩 관원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살펴보도록 한 제도
1696년 일본 도쿠가와(徳川) 막부,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대마번(対馬藩)에 전달 - 안용복(安龍福) 등 울릉도에 출어(出漁)한 일본 어선을 추격하여 자산도(독도)까지 따라가 그들을 쫓아냄.
1849년 프랑스 포경선(捕鯨船) 리앙쿠르(Liancourt)호, 독도를 발견하고, ‘Rochers Liancourt(Liancourt Rocks)'로 명명
1870년 일본 외무성 관리(佐田白茅 등),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부속’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 부속으로 되어 있는 전말”
※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이 지시한 조사사항에 대한 복명서인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에 기록
1877년 일본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太政官), 지적 편찬상 문제가 된 울릉도 외 1도(독도)가 일본령이 아님을 내무성(內務省)에 지령
- 태정관 지령 : “품의한 취지의 죽도(울릉도)외 1도의 건에 대하여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1882년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李奎遠) 일행, 울릉도를 검찰
1900년 칙령(勅令) 제41호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改稱)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改正)한 건(件)’을 제정 반포, 이 칙령 제2조에 울도군(鬱島郡)의 관할 구역으로 울릉전도(鬱陵全島) · 죽도(竹島)와 함께 석도(石島, 독도)를 규정
1905년 일본 시마네현 고시(島根縣 告示) 제40호를 통해 소위 독도의 영토 편입을 고시
1906년 시마네현 민·관 시찰단, 울릉도에 상륙, 군수 심흥택(沈興澤)을 방문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알림.
- 강원도 관찰사서리 춘천군수 이명래(李明來),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울도 군수 심흥택(沈興澤)의 보고를 재보고
- 의정부 참정대신, 강원도 관찰사에게 지령 제3호로 독도의 일본 ‘영지지설(領地之說)’을 부인하고,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들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다시 조사 보고할 것을 지령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1945년 광복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은 각서 제677호를 내려 일본에서 제외되는 섬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언급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일본이 한국에 대하여 모든 권리, 권원, 청구를 포기하는 지역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대표적으로 예시
1952년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국무원 고시 제14호)을 공포(일명 평화선)
- 일본 정부, 평화선 선포에 항의함과 동시에 독도에 대한 한국 영유권을 부정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옴.
1953~65년 한·일 간 독도에 대한 정부의 견해가 구술서의 형태로 왕복, 일본측 총 4회, 한국측 총 3회에 걸쳐 진행됨.
1954년(1962년) 한국 정부, 일본 정부의 ‘독도문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제의를 거부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 체결
1982년 독도를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해조류 번식지’로 지정
1998년 한·일간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1999년 독도를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명칭 변경
2000년 울릉군 조례로 ‘독도리’ 신설
2005년 일본 시마네현, 소위 ‘죽도의 날’ 제정 우리 정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 설치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 출범
2007년 일본 시마네현 소위 ‘죽도문제연구회’, 『최종보고서』제출
2008년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소위 “죽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개의 포인트 게재
7. 14, 일본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명기
8. 14,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개소
 
 
 

외국에서 본 독도

외국에서 본 독도 - 리 앙쿠르

  1. 1787년 5월 (정조) - 프랑스 - 라 페레즈 대령(la perouse) - 다 즐레(울릉도) - 관음도(부솔:Boussole)
  2. 1797년 - 영국 - 브로오트(Broughton) - 울릉도(아르고노트:Argonaute) - 그 뒤 유럽서 - 울릉도를 다즐레와 아르고노트 2가지로 기재
  3. 1840년 - 독일 - 지볼트(Siebold) - 일본지도를 만들면서 - 울릉도를 아르고노트 섬 - 독도를 다즐레 섬에 맞춰서 기재. 그 뒤 - 유럽지도 -아르고노트 섬은 없어지고 다즐레 섬만 남았다.
  4. 1849년 (현종15년) - 프랑스 - 고래잡이 베인 리 앙쿠르(Li ancourt)호가 독도를 발견 - 리 앙쿠르 록스(Li ancourt Rocks)라 명명 (Rocks는 바위의 복수 단어임) - 섬이라기보다는 2개의 바위 덩어리로 봄.
  5. 1854년 (철종 5년) - 러시아 - 푸차친(Putiatin) 해군 중장이 이끄는 군함 팔라다호(Pallada) 소속 올리부차호가 독도를 발견하고 - 메넬라이 앤드 올리부차록스(Manalai & Olivntsa Rocks)라 명명.
  6. 1855년 - 영국 - 중국파견함대 소속 - 호넷(Honet)함의 해군 중령 - 라르시스(Charlses c. Farsyth)의 지휘 아래 - 독도 측정 관찰 - 호넷롯스라고 명명(러시아와 영국도 독도를 열암으로 보았음)
  7. 서양지도에서는 - 독도를 "리 앙쿠를"라고 해양지도에 기재되었음.
  8. 일본은 - 1900년 이전까지는 - 독도를 "리 앙코르도 로코스" 또는 "리앙 고르도 열암"이라고 불렀다.
    증거 1 -1867년 만든 - "대일본국 연해 약도" 와 1870년 만든 "대일본 사신 도전"이라는 지도에 -' 리 앙코르도 로크스" 또는 "리앙 고르도 열암"이라고 불렀다.
    증거 2 -1880년 (고종 17년, 명치 13년) - 독도와 울릉도를 조사한 일본군함 - 야마키는 - 울릉도를 마츠시마 - 독도를 마츠시마에 좀 떨어지게 표시하고 "리앙고르도"라고 보고한 기록이 있음.
  9. 오늘날 독도를 리 앙쿠르(Li ancourt)라고 표시하는 나라가 있음 - 한일간의 분쟁지역으로 - 인정하는 셈. - 한일 독도 분쟁에 끼어 들고 싶지 않다는 계산임
 
 

위치 및 면적

위치 및 면적

주소

  • 우편번호 : 799-805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분번 포함 101필지)

섬의 구성 및 지명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독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의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도와 서도간 최단 거리는 저조시를 기준으로 151m 떨어져 있습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대한민국 고용의 영토인 독도의 자세한 지도를 그림으로 알려주는 그림

위치 및 거리

독도는 북위 37˚14´26.8˝, 동경 131˚52´10.4˝(동도 삼각점 기준)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동단의 섬입니다. 행정구역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101필지)이다. 독도를 기점으로 울릉도와의 거리는 87.4㎞(47.2M), 울진(죽변)에서는 216.8㎞(117.1M), 죽변에서 울릉도까지 최단거리 130.3㎞(70.4M), 독도에서 오끼군도까지(해도상기점) 최단거리 157.5㎞(85.0M)이다.
독도의 위치 및 거리를 그림으로 알려주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하단 내용을 참조하세요.

독도를 기점으로한 주요항 거리

독도를 기점으로한 주요항 거리
주요항 울릉도 동해 죽변 포항 부산 오키섬
거리(km) 87.4 243.8 216.8 258.3 348.4 157.5

대한민국 독도

  • 동도 : 동경 131˚52′10.4˝, 북위 : 37˚14′26.8˝
  • 서도 : 동경 131˚51′54.6˝, 북위 : 37˚14′30.6˝
독도에서 바라본 울릉도,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

섬의 구성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성된 독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187,554㎡에 달합니다.

[동 도]

동남쪽에 위치한 동도는 유인등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해양수산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섬입니다. 동도는 높이 98.6m, 둘레 2.8㎞, 면적 73,297㎡로 장축은 북북동 방향으로 약 450m에 걸쳐 경사 60°로 뻗어있고 , 중앙부는 원형상태로 해수면까지 꺼진 수직홀이 특징입니다.

[서 도]

서북쪽으로 위치한 서도는 높이 168.5m, 둘레 2.6㎞, 면적 88,740㎡ 장축은 남북방향으로 약 450m, 동서방향으로 약300m 가량 뻗어있습니다. 서도는 전체적으로 험준한 원추형의 발달상태를 이루고 있으며, 사면경사가 심하여 정상부분의 접근이 곤란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기 타]

동도와 서도를 제외한 부속도서들의 총면적은 25,517㎡이며, 동도와 서도간의 해협은 폭 151m, 수심10m 미만입니다
독도
 
 
 

형성과정

자연적 형성과정

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솟아 오른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신생대 3기 플라이오세 전기 약 460만년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 독도는 270만년전에 해수면 위로 올라왔고, 바닷물과 빗물에 용암이 식으면서 섬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하나의 섬이었던 독도는 250만년전 바닷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두개로 나누어 졌고, 바람과 파도에 계속 씻기고 부서져 210만년전 무렵에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독도는 우리나라 화산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울릉도와 비교하면 약 250만년, 제주도와 비교하면 약 340만년 앞선다.

독도 해산 형성과정

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솟아 오른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신생대 3기 플라이오세 전기 약 460만년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 독도는 270만년전에 해수면 위로 올라왔고, 바닷물과 빗물에 용암이 식으면서 섬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독도주변 해저지형은 서쪽으로 수심 2,000m가 넘는 울릉 분지 간 평원(Ulleung Interplain Gap)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독도를 포함해서 3개의 해산이 나란히 오키 뱅크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독도가 중심에 있는 것을 제1 독도해산 혹은 독도 해산(북위 37도 15분, 동경 131도 52분), 제1 독도 해산에서 남동쪽으로 약 15㎞ 떨어져 나타나는 것을 제2 독도 해산(북위 37도 9분, 동경 132도 2분), 그리고 제1 독도 해산으로부터 약 55㎞ 떨어진 오키 뱅크 서쪽 경계부에 위치하는 것을 제3 독도 해산(북위 37도 11분, 동경 132도 20분)이라 잠정적으로 이름 붙인다.

독도 해산은 서쪽으로는 수심 2,100m로 경계지어지고 동쪽으로는 제2 독도 해산 서쪽과 수심 800m의 해저골을 두고 분리되어 있다.

이 등수심선부터 북쪽과 서쪽으로 약 13도의 급한 경사를 이룬다. 이에 비해 독도 해산의 동쪽과 남쪽은 이보다 완만한 약 8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으나 해산 정상부는 수심 200-60m의 경사도 2도 미만의 매우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그 평탄한 지형 가운데 동도와 서도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 제2 독도 해산의 동쪽은 수심 약 800m에서 경계지어진다.

3개의 해산은 각각 서로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독도 해산은 북부와 남부가 직선적인 형태를 갖는 반면, 동부와 서부 경계는 곡선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서 제2 독도 해산은 거의 동북동으로 약 25㎞, 북북동으로 약 14㎞의 폭으로 동서로 긴 형태를 가지며, 중간에 100m 정도의 저지대를 두고 2개의 고지대가 동서로 나뉘어 있다.

이 해산은 독도 해산과 마찬가지로 수심 200m부터 flat-top을 이루며, 주변 사면의 경사도는 약 13도 정도이고 정상부의 경사도는 약 2도 정도이며 수면위로 노출된 부분이 없다.

가장 동쪽의 제3 독도 해산은 화산체의 상부대지가 3개의 해산 중 가장 넓은 반면, 해산 기저부로부터의 높이는 약 600m로 가장 낮다. 3개의 해산 중 독도 해산에 독도가 아직 잔류되어 있는 것은, 생성시기가 보다 오래 된 것으로 알려진 동쪽 해산으로 갈수록 긴 시간의 파식작용을 받은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찬홍,「독도의 성인(成因)과 지질환경」,『독도인근해역의 환경과 자연적 가치』(독도해양수산연구회 편저, 2003), 93-99쪽.
독도의 북동, 북서 심해지역은 남서-북동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북서쪽으로는 한국 대지의 남쪽 경계지역과 인접해 있고 북동쪽으로는 일본 분지로 이어지는 울릉 해저수로가 연장 발달되어 있다. 이 해저수로는 울릉 분지 해저평원으로 유입된 저탁류 퇴적물의 일부가 수로를 따라 일본 분지로 운반되는 이동 통로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되고, 울릉 해저수로는 저탁류 해저수로(turbidite channel)로 간주된다.

독도 북쪽의 심해 지역은 2,300m 정도로서 매우 평탄한 해저지형으로 발달하여 울릉 해저수로??경계된 지역까지 독도로부터의 많은 해저곡이 발달 연장되어 있다.

독도 및 수심 2,400m까지 지역을 포함하는 독도해산의 해저지형은 수심 약 200m까지는 거의 평탄한 파식대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정상부의 폭은 최대 약 13㎞에 이른다. 이와 같은 파식대지는 암질이나 구조의 변화가 거의 없이 일정한 지역에서 잘 발달되며, 폭풍 등에 의해서 일어나는 파랑 에너지가 강한 침식작용을 일으킴으로써 cliff(절벽)이 후퇴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독도는 이 파식대지에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처져 있으며 화구륜(crater rim)의 일부로 해석되고 있다. 독도 해산의 수심 200-1400m는 경사도가 약 16도로 급하게 깊어지며, 그로부터 2,000m까지는 7도로 보다 완만한 경사를 보인다. 해산 정상부는 수심 200-60m까지 경사도가 2도 미만의 매우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 동도와 서도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 독도의 기저부는 수심 약 2,100m 부근이며 그 외곽은 울릉 분지와 울릉 분지 간 평원 쪽으로 2,400m까지 완만하게 깊어진다. 독도 해산의 기저부는 폭이 약 35㎞에 이르며, 상부에서 기저부까지의 전체 높이는 1,800m에 이른다. 독도 해산의 주변에는 많은 해저곡(valley)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 해저곡들은 심해의 분지로 연결된다.

독도 최근접 연안 지역인 반경 1㎞ 이내 지역의 수심 분포를 보면 동도와 서도를 중심으로 인접 해저는 10m 이내로 매우 얕은 수심을 보이며, 노출암이나 수중 돌출암 등이 불규칙하게 산재되어 있다. 이러한 노출암, 간출암 및 수중 암초는 특히 서도의 남서 인접 해저에서 가장 빈번히 발달하고 있다.
 

자연환경

독도의 자연환경

육상지질

독도의 암상 분포는 독도가 여러 단계의 화산 활동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독도 초기에는 수중에서 비교적 조용한 용암분출이 일어나 각력질 조면암류가 형성되었으며, 해저산이 성장하여 수면위로 상승한 중기에는 폭발적인 화산분출(각력응회암과 층상응회암) 및 다량의 용암류가 피복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조면암의 관입 및 기존에 형성된 단층대 등을 통해 암맥상의조면암이 형성되었다.
독도의 육상지질
독도와 울릉도 화산암류는 방사성 동위원소 조성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치하고, 북동아시아 신생대 후기의 여러 알칼리 화산암류와는 전혀 대비되지않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독도, 울릉도 화산암류는 모두 판내부 해양도 화산암류가 갖는 화학조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들은 깊은 맨틀로부터 상승한 폴륨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형성 시기면에서 현재 해수면 위의독도(270만년전~210만년전)는 울릉도(140만년전~약 1만년전) 보다 오래되었다. 특히 화산활동이 종결된 시기를 비교하면 독도가 약 200만년정도 오래되었다.

해상지형

애국가의 가사대로 동해물이 모두 마른다면 동해와 독도는 어떤 모습일까?

수심200m보다 얕은 대한 해협, 쓰가루 해협, 소야 해협, 타타르 해협을 통해 동중국해, 북태평양, 오호츠크 해와 연결되어 있는 동해는 평균 수심이 1,684m, 최대수심은 4,049m이다. 평균 수심 44m인 황해와 비교하여 심해인 동해가 한반도주변 해역을 차지하는 비율은 면적으로 따진다면 약 65%이며, 부피로 따진다면약98%이다.

동해 북부에는 최대수심 약 4,000m의 일본분지(Japan Basin)가 위치하고 있고, 남부에는 야마토 융기(대화퇴, Yamato Rise)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수심 ,500m 이하인 한국 대지(KoreaPlateau)와 최대 수심 약 2,300m인 울릉분지(Ulleung Basin)가 있으며, 동쪽에는 야마토 분지(Yamato Basin)가 위치한다.
독도의 해상지형
만일 동해물이 다 마른다면 한라산보다 더 높은 독도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해수면 아랫부분까지 합하여 독도 해산이라 이름 붙여진 이 송곳 모양의 해산의높이는 2,000m 이상으로, 우리가 보는 독도는 이 해산의 정상부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독도는 주로 수심이 평행한 방향으로 흐르는해류 분포에 있어 지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심해통로인 Ulleung Interplain Gap(UIG)은 동해 북부 일본 분지에서 기원된 심층수가 울릉 분지로 이동하는 통로로서 최대 수심이 약 2,300m이며, 폭이 약 90㎞fh 바닥지형은 거의 대칭적인 형태이다.

이에 반해 독도와 일본 오키 섬 사이의 오키 뱅크(Oki Bank)는 울릉 분지와 야마토 분지 사이의 심층수 교환을 차단하는 벽으로작용하고 있으며, 일본 분지와 울릉 분지 사이에는 한국대지가 위치하고 있어 일본 분지와 울릉 분지 간의 심층수 교환이 제한되므로 울릉도-독도 간 해저수로인UIG는 울릉 분지의 수심 1,500m보다 깊은 곳에 분포하는 심층수의 유일한 이동통로가 된다.

울릉도 북동쪽에는 폭이 좁고 수심이 2,000m 이상인 울릉 해구(Ulleung Trough)가 있어 한국대지를 양분하고 있으며, 울릉도 동쪽에서는 해수면에서 457m를 내려가면 2,000m 등심선의 폭이 약 13㎞인 해산(seamount)의 정상부를 만나게 된다.

독도 주변 해역의 저층수 분포

<김윤배·장경일,「독도 주변 해역의 해양 물리학적 특성」,『독도인근해역의 환경과 자연적 가치』(독도해양수산연구회 편저, 2003), 48-51쪽   >
울릉 분지 수심 200m보다 깊은 곳에 분포하는 수온 1℃ 미만의 동해 고유수는 동해북부 일본 분지에서 기원하며, 동해 북부 일본 분지 동해 고유수는 동해안과 울릉도사이의 한국대지와 울릉도-독도 간 단면을 통해 울릉 분지에 도달할 것이다.

울릉 분지의 최대 수심은 약 2,200m이며, 울릉도-독도 간 단면의 수심 약 1,500m보다 깊은 곳의 수온(potential temperature : 온위, 수심 증가에 따른 압력 증가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온도 상승효과를 배제한 수온. 수심 2,000m의 경우 압력 증가로 약 0.0035℃가 높아진다.)은 0.1℃ 미만이다. 1996년이래 축적된 전 층에 걸친 CTD 자료를 이용하여 작성한 울릉 분지 바닥 근처의 수온의 수평 분포를 살펴보면, 울릉분지에서 가장 낮은 수온은 0.07℃이다.

수심이 약 1,500m보다 깊은 울릉 분지 넓은 해역에 분포하는 0.1℃미만의 저층수는수심이 1,500m보다 얕은 한국 대지에서 관측되지 않으며, 수심이 2,000m 이상인 울릉도-독도 단면과 울릉도 북동쪽 인근 수심 2,000m 이상의 울릉 해구에 나타난다.

수온 0.1℃ 이하의 해수는 수괴 분석에 의하면 동해 심층수에 해당하며, 이로부터동해 북부의 일본 분지에서 기원하고 울릉분지 저층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수온0.1℃ 미만의 동해 심층수는 울릉도-독도 간 단면을 통해서만 울릉분지로 유입됨을알 수 있다.

독도의 생태계 독도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철새들의 이동경로상 일종의 구원섬 (rescue island)의 역할을 하며, 단순화된 서식지 형태와 함께 육지와 울릉도 와의 연계 등 특수한 생물·지리학적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도의 생태계

독도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철새들의 이동경로상 일종의 구원섬 (rescue island)의 역할을 하며, 단순화된 서식지 형태와 함께 육지와 울릉도 와의 연계 등 특수한 생물·지리학적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식물]

현재까지 독도에서 조사된 식물은 약 50∼60종 내외이며, 초본류로는 민들레, 괭 이밥, 섬장대, 강아지풀, 쑥, 쇄비름, 명아주, 질경이 등이, 목본류로는 곰솔(해송), 섬괴불나무, 붉은가시딸기, 줄사철, 동백 등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어류]

독도 및 인근해역의 대표적인 어류로는 오징어, 꽁치, 방어, 복어, 전어, 붕장어, 가자미, 도루묵, 임연수어, 조피볼락 등이 있으며, 전복, 소라, 홍합 등의 패류와 미역, 다시마, 김, 우뭇가사리, 톳 등의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해삼, 새우, 홍게 등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독도의 가치

경제적인 면

  • 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 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 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히곤한다.
  • 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 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며, 특히 1981년 서울대 식물학과 이인규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독도의 해조식생이 남해안이나 제주도와 다른 북반구의 아열대지역이나 지중해 식생형으로 볼 수 있기에, 별도의 독립생태계 지역으로 분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 하고 있다.

군사적 및 해양 과학적인 면

  • 1905년 노일전쟁의 최후를 장식한 이른바 '동해의 대해전'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한국령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개명하며 시마네현 은기도(隱岐島)의 소관으로 1905년 2월 15일에 일본내무성의 결정으로 독도를 강제적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하였으며, 1905년 8월 19일에는 독도에 망루를 준공하였<극비 명치삼십칠팔년 해전사>기에,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고성능 방공레이더 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 또한 경상북도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72억원을 들여 독도 북서쪽 800m 해상에 50평 규모의 철골 구조물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구매일신문.98년 12월 4일자)

    이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통해 독도주변 해역의 해양상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기상예보모델의 초기값 중 해양 상태를 나타내는 값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시킴으로서 보다 적중률 높은 기상 예보가 가능함은 물론, 지구환경 연구, 해양산업활동 지원과 해양오염방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실제 1993년 10월 북한 청진항 동쪽 300km 해상에서 러시아가 핵 폐기물을 투기한 행위가 환동해권 국가인 한국 및 일본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이후 동해 내에 투기된 오염물질의 이동, 확산, 분해, 해저 침적과정 등을 이해하고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동해의 해수 및 물질순환에 관한 연구 3차년도 최종보고 서. 과학기술처. 1997)
 
-- 상기 자료는 해양경찰청 "독도는 우리땅" 중에서 ... --
 
(dokdonews) 독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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